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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하루

이룬게 없으면 과거에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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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각 인생마다 달성해야할 과업이 있습니다. 해당 과업을 이룰수록 세상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고 한 단계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각 시점에 적절한 과업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그 사람은 마지막으로 달성한 과업에 멈춰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수능이 자신이 이룬 최대 업적인 사람 a가 있습니다. a는 대학을 입학한 후 취업, 승진, 재테크 등 더이상의 새로운 과업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경우 a는 주변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점차 소외되거나 뒤쳐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한 '내가 너보다 수능 성적 좋았는데'라는 과거에 집착하며 현재 잘나가는 친구를 시기하고 질투하게 됩니다. 이는 더 이상의 인생 과업을 이루지 못하고 과거에 머무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던 시점에, 더이상의 발전을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했습니다. 남들은 다 한다는 동아리나 봉사활동, 인턴 등 외부 활동은 일체 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살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서 여전히 내가 이룬 인생 최대의 업적은 대입이었고, 가장 노력했던 순간은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과거에 취해 멈춰있는 사이 친구들은 계속해서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외부 활동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좋은 기업에 취직했습니다. 나보다 뒤에 있다고 생각해오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나를 제치고 먼저 사회에 진출하여 멋있고 폼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점차 친구들과 비교되는 나 자신을 깨달으면서, 세상을 보는 내 시야가 좁아지고 편협해짐을 느꼈습니다. 친구의 농담을 기분 좋게 넘기지 못하고 하나하나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룬 최대 업적이 무시받을라치면 신경질적으로 대응했습니다. 내가 이룬 최고 업적이 그것인데 남이 그것을 폄하하는걸 참을 수 없었거든요.

 

또 다시 시간이 흘러 간신히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 인생 최고의 업적은 취업이 되었죠. 그래서인지 이제는 누군가 공무원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 공격적으로 반응합니다. 인생 최대 업적인 공무원 임용이 곧 나의 인생이고 삶이기에, 그것을 공격하면 마치 내 자신이 공격받는다 느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적응하니 이번에는 직장 내에서 업적 다툼이 시작됩니다. 먼저 취업한 선배는 승진을 준비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승진을 준비하면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과 인맥을 쌓으라고 알려주었죠. 임용 후 새로운 인생 업적을 달성하기가 어려운 신규 공무원에게, 승진은 새롭게 부여받은 과업이었습니다.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부당한 대우와 불만족스러운 취급을 받으며 승진을 준비했습니다. 대략 4-5년 정도 승진에 몰두하다보니 어느 순간 이것이 내가 추구해야할 다음 과업이 맞는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몸과 마음을 축내며 지속하는 이 삶의 결과가 기대만큼 만족스러울까?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함께 하는 동료들의 매몰된 삶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는 것인지 불안해졌습니다.

 

한 가지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2-3년간 그것에 몰두하는 습관 때문인지, 운이 좋게도 17년부터 시작한 재테크가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주위의 동료들은 영민하고 민첩하지만, 승진에 집중하다보니 새로운 기회를 빠르게 캐치하지 못했습니다. 평소에는 관심 없는 척,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던 동료들이 술자리에 모이면 깊은 한숨과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번 과업이 멈춰버린 사람들의 회한이 느껴졌습니다.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금 나 자신을 돌이켜 봅니다.

 

취업의 길에 막혀 바둥거리던 나에게, 좋은 직장을 가진 친구들은 부러우면서도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임용이 된 이후 공무원 사회를 비판하는 친구들은 언쟁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부담스러운 마음에 친구들과 나 사이에 작은 벽을 쌓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친구들을 만나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결혼과 재테크 등 내가 이룬 과업들은 나를 지지하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주었고, 직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나 자신이 당당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내가 무언가-예를 들어 공무원-와 동일시하는 일이 사라지면서, 타인의 날 선 비판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마음을 갖추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알았습니다. 꾸준히 과업을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발전시키는지 말이죠. 그래서 저는 다음 과업을 준비합니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가치 판단 기준을 확인했으니 그에 맞춘 다음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다시금 노력해야겠죠. 이는 남들의 시선과 평가 때문이 아닌 오롯히 나 자신의 인간적 성장과 시야 확장을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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